온라인카지노 업체들,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대상 베팅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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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의 온라인카지노 업체들은 단순히 스포츠 베팅과 카지노 게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정치와 사회 및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이슈가 되는 일에 대한 베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가장 큰 이벤트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였는데, 지금 현재 가장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는 이벤트는 바로 차기 교황 선출을 둘러싼 예측입니다.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지난 4월 21일 서거한 이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온라인 베팅 플랫폼들은 유력한 267대 교황 후보들에게 배당률을 책정하고 있습니다.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가 5월 7일 열릴 것으로 확정된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누가 차기 교황이 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엄청난 규모의 베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베팅 시장 판도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환되면서, 이제는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황 선출에 대한 베팅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올해 가장 큰 정치·사회적 베팅 이벤트가 될 것으로 보이는 차기 교황 선출을 둘러싼 베팅 시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거로 열린 '차기 교황' 베팅 시장


지난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의 나이로 서거하자, 암호화폐 기반 온라인 예측 시장인 폴리마켓(Polymarket)에는 누가 차기 교황이 될 것인지 13명의 후보를 놓고 베팅이 급증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망한 다음 날 아침, 폴리마켓에선 차기 교황을 둔 베팅에 대해 300만 달러(42억 원)가 베팅되었습니다. 4월 21일 당시에는 '피에트로 파롤린'이 37%, '루이스 안토니오 고킴 타글레'가 26%,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가 10%, '페테르 에르되'가 8%, '피터 턱슨'이 7%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물론 예측은 예측일 뿐입니다. 이탈리아에는 "교황으로 콘클라베에 들어간 사람은 추기경으로 콘클라베를 나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콘클라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번에 서거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콘클라베에 대한 베팅에서 15순위에 불과했습니다. 폴리마켓에서는 이외에도 차기 교황 선출 시기는 물론, 어느 대륙 출신일지 여부와 흑인일지 여부에 대한 베팅도 변행됐습니다.


당초 폴리마켓은 프란치스코 교황 서거 직전까지만 해도 2025년 내로 콘클라베가 열리지 않는다, 즉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거하지 않을 것이라는 베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의 계약 가격은 달러당 66센트였는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내로 서거하지 않을 확률이 3분의 2에 달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거하며 이 베팅은 종료되었고, 콘클라베에 대한 베팅으로 이어졌습니다.


· 피에트로 파롤린 (Pietro Parolin) :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로서, 프란치스코 교황 아래 2인자이자 바티칸 수석 외교관입니다. 2013년부터 바티칸 국무장관을 맡아 온 그는 '부교황'으로 불리며 비교적 온건한 선택으로 여겨집니다.


· 루이스 안토니오 고킴 타글레 (Luis Antonio Tagle) : 필리핀 출신으로서 '아시아의 프란치스코'로 불리며, 교황에 선출될 경우 최초의 아시아 출신 교황이 됩니다. 다양한 지역 출신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분위기상 피에트로 파롤린 못지 않은 강력한 교황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 페테르 에르되 (Péter Erdő) : 72세의 헝가리 출신인 그는 다른 후보보다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졌습니다. 2013년 콘클라베 당시에도 교황 후보로 거론되었으며, 이후 진보적인 가톨릭 신자들과 교류를 이어가며 보수와 진보를 타협하는 후보로 지목됩니다.


· 피터 턱슨 (Peter Turkson) : 76세의 가나 출신인 그는 교황에 선출될 경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교황이 됩니다.


전세계적으로 교황 선출에 대한 베팅 열기가 더해가는 배경에는 온라인카지노 산업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스포츠 경기에 베팅하려면 우리가 경마장을 찾아 경마에 베팅하듯이 카지노 영업장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토토사이트의 발전으로 이제는 집 안 소파에 앉아 경기를 시청하며 본인이 원하는 장소, 원하는 때 편하게 베팅에 임할 수 있습니다. 교황 선출 베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콘클라베는 귀족 사회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시민들은 콘클라베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기에 차기 교황에 대한 베팅 역시 바티칸을 둘러싼 상류층이 독점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콘클라베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입수할 수 있게 되었고, 언론의 보도를 통해 차기 교황 중 누가 유력한지 여부에 대한 정보도 쉽게 입수 가능합니다. 게다가 온라인카지노 산업의 발전으로 이제는 누구나 소액과 고액을 가리지 않고 카지노사이트에 접속해 차기 교황에 대해 베팅할 수 있습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가장 유력한 교황 후보에게는 당연히 가장 낮은 배당률이 책정되며, 가능성이 낮을 수록 배당률이 높아집니다.


현재 정치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 중 미국 대통령 선거 다음으로 가장 큰 베팅 시장이 교황 선출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에 비해 교황 선출은 전임 교황이 서거해야만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이벤트적인 성격은 대통령 선거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팅엄 비즈니스 스쿨(Nottingham Business School)의 경제 및 금융학 교수 레이튼 본 윌리엄스(Leightin Vaughan Williams)에 따르면, "예전에는 주로 르네상스 시대 로마의 은행가와 궁전 신하들이 즐기던 내기 소재가, 이제는 버튼 하나만 클릭하거나 암호화폐 지갑을 이용하면 손쉽게 참여 할 수 있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 내기로 진화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의 역사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콘클라베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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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세력을 자랑하는 가톨릭의 차기 영적 지도자를 대상으로 베팅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자칫 성스러움을 모독하는 불경(不敬)한 행위로 보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전임 교황이 서거해야만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때문에, 차기 교황에 대한 베팅은 교황의 목숨을 두고 벌이는 내기와도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차기 교황 선출을 둘러싼 베팅은 사실 매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서양에서는 일찌감치 콘클라베가 열릴 때마다 차기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베팅을 벌여 왔으며, 현대에선 온라인카지노가 베팅의 장을 대신할 뿐입니다.


교황 선거에 대한 베팅은 약 15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대한 최초의 문서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직책은 '도제(Doge)'에 대한 선거를 대상으로 한 베팅도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콘클라베 베팅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알렉산데르 6세의 후임으로 비오 3세가 선출된 1503년 9월의 콘클라베입니다. 그러나 이는 최초의 기록일 뿐이며, 역사가 프레데릭 바움가트너(Frederic Baumgartner)의 말처럼 콘클라베 베팅은 그 당시에도 이미 매우 오래된 관행이자 '놀이'였습니다. 1513년 레오 10세가 선출된 콘클라베에 대해서는 "교황 선거 결과에 베팅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고, 로마 은행들이 센살리(Sensali)라고 불리는 전령을 통해 베팅 전표를 앞뒤로 배달하며 베팅을 진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내부자 거래가 이루어진 정황까지 발견됩니다. 1549년부터 1550년까지 열린 콘클라베에서는 많은 로마 은행가들이 가장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를 말하는 파파빌리(Papabili)에 대한 베팅 스프레드(Spread)를 제공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베팅 스프레드란 단순히 예측 성공과 실패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베팅 옵션을 두고 해당 옵션에 대한 배당률을 책정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베팅을 말합니다. 이 선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는 "상인들이 선거 진행 상황을 매우 소상히 알고 있었고, 선거에서 추기경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내기에 참여했기 때문에 베팅 결과에 영향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는 차기 교황에 대한 베팅 뿐만 아니라 콘클라베가 언제 끝날 것인지 여부 대한 베팅 역시 진행되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던 와중 차기 교황에 대한 베팅은 매우 세속적이고 불경한 일로 여겨져, 1591년부터 베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파문한다는 조항까지 생겨났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1419년 차기 교황에 대한 베팅을 금지했고, 1435년 바르셀로나와 1494년 제노아 역시 베팅을 금지했습니다. 1591년 3월, 교황 그레고니 14세는 콘클라베 결과나 추기경 임명에 대해 베팅을 한 사람은 파문이라는 형벌을 부과하기로 했고, 교황령 영토 내에서 차기 교황에 대한 베팅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팅은 암암리에 꾸준히 지속되어 1918년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개력과 함께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공개적인 곳에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콘클라베에 베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오 9세의 후임 교황을 선출하는 1878년 콘클라베를 앞두고 뉴옥 타임스는 "이탈리아인들은 모두 미신이 믿으며 복권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모든 이벤트에 배당률을 매겨 내기를 즐긴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비오 9세의 서거로 인해 열리는 콘클라베를 두고 많은 이탈리아 국민들이 흥분에 빠져 있으며, 거액의 돈이 오간다고 덧붙였습니다.


1903년과 1922년 콘클라베는 점차 대중화되는 차기 교황에 대한 베팅을 엿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1903년 콘클라베를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가 운영하는 복권은 교황의 죽음에 대한 배당률을 제공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으며, 교황 레오 13세가 일주일만 일찍 사망했다면 정부는 약 100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특히 1978년은 한 해에 콘클라베가 2번이나 열리는 진기한 일이 벌어지며 콘클라베 베팅 또한 과열된 양상을 보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1978년 8월 26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불과 33일 만에 선종하며 다시 한 번 콘클라베가 열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2005년 선종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재임하면서, 차기 교황 선출을 둘러싼 베팅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의 나이가 많아지자, 아일랜드 최대의 스포츠 베팅 플랫폼인 패디 파워(Paddy Power)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망하기 5년 전부터 차기 콘클라베에 대한 베팅을 개시했습니다. 패디 파워는 바티칸 한복판에서 차기 교황에 대한 배당률을 적은 입간판을 들고 광고를 하다 바티칸 교계와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여러 논란을 뒤로 하고 결국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하고 2005년 콘클라베에 대한 베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으며, 패디 파워는 이를 두고 "역대 최대 규모의 비(非)스포츠 베팅 시장"이라 평했습니다. 2005년 콘클라베에 대해 베팅을 제공한 것은 패디 파워 뿐만이 아니며, 영국의 유명 스포츠 베팅 플랫폼인 피나클(Pinnacle)과 윌리엄 힐(William Hill) 역시 베팅을 제공했습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라스베이거스의 베팅 플랫폼입니다. 라스베이거스의 스포츠 베팅 플랫폼들은 '취향'을 문제로 2005년 콘클라베를 대상으로 베팅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콘클라베, 전세계 추기경들이 참가해 비밀 투표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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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는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 '쿰 클라비스(Cum Clavis)'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가톨릭 초창기 교황은 지역 성직자와 신자들의 선거로 뽑혔는데, 교회의 권력과 영향력이 커지자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황제나 왕, 귀족이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추기경에게 선거권을 국한시키는 방침을 내세웠고, 1179년 제3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통해 추기경 3분의 2가 동의하는 자를 교황으로 선출하는 다수결 방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다수결 선출 방식이 낳은 문제도 있었습니다. 1268년 비테르보에서 열린 콘클라베는 추기경들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며 해를 넘겨 1271년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새로운 수장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공석이 되며 비테르보 당국과 시민들은 성당의 문을 잠그고 빵과 물만 제공하며 지나치게 길어지는 선거를 하루 빨리 마무리하도록 종용했고, 2년 9개월만에 새로운 교황이 선출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은 1274년 이 방식을 제도화하며 비로소 우리가 아는 첫 콘클라베의 형식을 갖추었습니다. 이후 세부적인 규칙은 지속적으로 수정됐지만, 성당의 문을 걸어 잠그고 추기경들이 다수결로 교황을 선출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을 뽑는 2025년 콘클라베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6년 반포한 교황령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에 따라 치러집니다. 이에 따르면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만 선거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며, 교황 선출권을 보유한 추기경의 수는 120명 이하로 제한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80세 미만 추기경을 120명 이상 임명한 탓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4월 21일 기준 135명의 추기경이 교황 선출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135명 추기경단의 출신은 매우 다양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임명한 추기경이 5명, 베네딕토 16세가 22명,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 108명입니다. 유럽 출신이 53명, 아시아 23명, 북아메리가 20명, 남아메리카 18명, 아프리카 189명, 오세아니아 3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로써 135명의 추기경단 중 건상상의 이유로 불참하기로 한 2명을 제외한 133명이 콘클라베에 참석하며, 2025년 콘클라베는 역대 최다 인원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115명이 참석한 2013년(프란치스코 교황 선출)과 2005년(베네딕토 16세 선출)을 넘어서는 기록입니다.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는 첫째 날 한 차례 진행되고, 다음 날부터 오전과 오후 각각 두 차례씩, 하루에 총 4번까지 진행됩니다. 만약 사흘 동안 교황이 결정되지 않으면 하루 동안 투표를 중단하고 추기경들은 기도와 대화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후 7번의 투표를 진행하고,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시 하루 중단하며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2025년 콘클라베는 길어도 5일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4차,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5차 투표로 이틀 만에 교황이 선출됐으며, 264대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사흘에 걸쳐 8차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5일 이내에 투표가 마무리 되는 최근의 경향을 감안하면, 5월 7일 시작 후 중순에는 새로운 교황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다수 추기경이 첫 참가하는 콘클라베, 예측불허 속 치열한 로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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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황 선출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콘클라베이 참여하는 133명의 추기경단의 경력과 지역, 연령 분포 등에서 어떠한 공통점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추기경단의 80%가 최근 12년 사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한 사람들이고, 이 중 20명은 작년 12월에 선출되어 추기경이 된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추기경단이 80%가 처음 겪는 콘클라베인 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교적 젊은 추기경의 비율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작년 12월 서임된 추기경 20명 가운데 7명은 60세 미만이며, 호주 멜버른의 미콜라 비초크(Mtkola Bychok) 주교는 고작 44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파벌이나 세력을 구성하기도 어렵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양한 인종과 지역을 포용하려 한 결과 이란과 알제리, 몽골 같은 작은 국가에서조차 추기경이 선출됐습니다. 이로 인해 2013년 콘클라베 당시 50% 이상을 차지한 유럽 출신 추기경들의 비중은 현재 39%까지 낮아졌으며, 아시아 출신 18%, 라틴 아메리카 18%,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이 1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종적 다양성과 지역적 다양성이 새로운 교황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새로운 교황 자리를 둘러싼 로비전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바티칸 교황청 내 복도와 식당, 정원 등지에서는 가톨릭의 방향성에 관심이 많은 추기경들이 즉석 회의나 홍보전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적인 행보를 계승하려는 진보 진영과, 대척점에 섰던 보수 진영의 경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기간 중 교회의 전통적 가치가 위협받았다고 주장하는 보수 진영이 교황 자리를 탈환하기 위한 로비에 힘쓰고 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미국의 프랜시스 레이먼드 버크(Raymond Leo Burke) 추기경과 독일의 게하르트 뮐러(Gerhard Ludwig Müller) 추기경이 ‘일치(Unity)’를 내세우며 로비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갈등을 빚어 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이며, 뮐러 추기경은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가톨릭 교회가 분열될 수 있다며 보수 진영의 집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선 진보 진영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를 이어받아 ‘다양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장 클로드 홀러리치(Jean-Claude Hollerich), 영국의 티모시 래드클리프(Timothy Peter Joseph Radcliffe), 캐나다의 마이클 체르니(Michael F. Czerny) 등이 로비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 유력한 교황 후보로 꼽히는 이들과 함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로비전까지 과열되며, 새로운 교황 후보만 2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을 지시하는 진보적 추기경으로 100명 이상을 채웠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역사적으로 어떤 교황도 본인의 후임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며, 콘클라베의 자율성과 예측 불허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력 후보가 거론된 추기경이 예측 그대로 교황에 선출되는 일은 역사적으로 드문 편입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선거 당시에는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으나, 콘클라베를 앞두고 바티칸에서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진행한 4분간의 짧은 연설로 추기경단을 사로잡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가톨릭 역사학자 마일스 패튼던(Miles Pattenden)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 악화가 뚜렷하게 관측되었기 때문에 차기 교황에 대한 이야기가 올해 초부터 꾸준히 이어졌을 것"이라며 차기 교황에 대한 내부 의견이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상황일 수 있다는 예측을 더했습니다. 뉴옥타임스는 "추기경들이 바티칸 성벽 뒤에서 매일 회의를 하고 있다"고 전하며, 4월 28일부터 비공개 회의를 시작해 교회가 직면한 주요 현안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차기 교황 자리를 둘러싼 로비전이 전개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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